치매 초기 증상, 치매라는 몹쓸 병은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최후의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나의부무님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었지만 자식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것 갖습니다. 당시에는 남의일만 갖았던 일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니 어찌 할바를 모르겠더군요, 지금부터 지난 저의 경험담은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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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초기 증상, 치매 환자와 함께 동행 한다는것
치매를 앓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저의 어머님의 이야기입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시겠지만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가 순전히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에게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 글을 보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저의 모친께서는 치매 증상이 오기 전에 뇌출혈로 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 치료를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입원 당시에는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지 않으셨지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유는 어느 날 어머님의 말씀이 어딘가 모르게 어눌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입에서 침을 흘리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입꼬리도 살짝 돌아간 것 갖은 모습이지 뭡니까.
치매의 초기 증상과 조기 발견의 중요한 부분
해서 이상하다는 마음으로 우선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의사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뇌에 아주 가느다란 실 핏줄이 터졌다고 하더군요, 수술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저의 모친께서 당시에 연세가 너무 고령이시라 수술을 하게 되면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주치의가 수술을 만류하더군요 그리고 약물 치료에 들어 갖습니다.
그렇게 약물치료를 두 달가량 받으니 증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보였습니다. 당시에 두 달이라는 병원 생활에 어머님은 치치기도 하셨지만 그보다는 병원비였습니다. 너무 부담이 되더군요 그래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퇴원을 하신 저의 어머님을을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요 아직은 완전 회복이 되지 않았는지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어하시더군요 그래서 기저귀를 채워 드렸습니다.
치매 초기 증상, 수면 부족 식사와 물 거부.
그렇게 20일 정도 지나니 어머님의 몸이 회복이 되셨는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 하더군요 그리고 아무 문제없이 생활도 잘하 시고 식사도 여느떼처럼 잘하시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되는 즈음에 문제가 하나둘 생기게 되더군요 어느날은 어머님이 잠을 주무시지 않으며 밤을 세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떼까지만 해도 어머님이 치매 증상이 있다는것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다 하시며 물을 달라 해서 물을 드리면 드시지 않고 물을 쏟아붓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식사도 예외는 아니었죠 시장하다고 해서 식사를 차려드리면 밥에 약을 탔다며 상을 엎어버리기 일 수였지요 이 떼 알게 되었는데 저의 어머님은 치매 초기 증상을 넘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매 환자 부모님에게, 자식들의 마음은?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식들을 이만큼 장성하게 길러주시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부모님의 말년이 이렇게 힘들게 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자식들의 마음은 늘 이기적이라고 누가 말을 하더군요 저 역시 그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이런 상황이 오게 되니까 비로소 깨닫게 되더군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갖습니다.
치매를 앓고 계신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제 자신이 전혀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님께 맞추어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통할 리가 없겠지요 이미 어머님의 모든 정신과 마음은 당신 혼자만의 세계에서 갇혀 계신 분이기에 전혀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하시니까요
증상은 해가 갈 수 록 더 심하면 심했지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생각이 나더군요 이로 인해서 가족들 간의 반목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희 형제들은 저의 위로 형님 두 분이 계시고 제가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을 제가 30여 년간 모시고 살았지요 당시에는 어머님께서는 형들 보담은 막내인 제가 재일 편하다며 막내인 저와 사는 것을 바라기도 하셨지요.
6. 치매 에도 종류가 있다 (로이소체 치매)
치매에도 종류가 있는데요 3가지의 증앙의 치매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중에서도 주위사람을 가장 힘들게하는 치매가 루이소체 치매라는 증상의 종류인데요 이 루이소체 치매 증상은 환각과 망상 증상을 보이며 매우 힘들어 하셨고 때로는 감정조절이 어려우셨습니다. 세상에 저의 어머님은 최악의 루이소치 치매라는 중중 치매를 앓고 계신 거 였습니다. 이 루이소체 치매는 실제로 존제하지 않는 사람을 마치 실제인양 말씀을 하시기도 하였지요,
의사들 말로는 이를 시각적 환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저의 어머님께서도 그러 하셨으니까요 어머님은 이를 실제로 믿기 때문에 가족들 간에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머님의 일방적이었지만요 한번은 어머님이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고 있는지 당신 혼자서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지요 이런 일은 밤에는 잠을 안 자다가 낫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가 거듭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완벽한 보호자가 될 수 없구나라는 몹시 이기적인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되더군요 주위에서 요양원에 모셔라 또 어떤 분들은 요양 병원으로 모셔라 하며 여러 의견을 주시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나의 부모님을 그런데 모실 수 있나 하고 당시만 해도 요양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6-1. 치매 환자 에게 완벽한 보호자란?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의 아내와 하나 있는 딸에게도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너무 힘이 들더군요 저의 가족 역시도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님과 마찬가지로 수면 부족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출근을 하게 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해서 핑계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요양원보다는 그래도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지금보다 좀 더 호전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지요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던 날이 생각이 나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유는 어머님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시는데 어머니에게 이런 힘이 남아있으셨나 할 정도의 힘으로 동내가 떠들썩하게 고함을 지르며 힘든 모습을 보이셨지요, 이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머님을 요양 병원으로 모시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119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는데요 힘이 좋은 응 급 대원들에 의해서 결국에는 인근의 가까운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6-2. 요양병원 에서 어머님의 상테
그렇게 어머님을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요양 병원에서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계시는 동안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손목에 차는 아대를 준비하라는 말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는데요 양손을 병원 침대에 묵어놓아야 하는데 환자가 자신의 손을 이용해서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요양병원을 나서는데 왈칵 눈물이 흐르며 긴 세월 어머님과 함께했던 모든 날들을 떠올리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지난 세월 어머님과 함께했던 그 세월이 그날처럼 그립고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주말에 어머님을 뵈러 갖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어머님의 양손이 병원 침대 모서리에 묵여있지 뭡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며 요양 병원 관계자에게 따져 물었더니 어머님께서 너무 난폭한 행동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양손을 묶어놓았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더군요 치매를 앓기 전에는 누구보다도 온순하고 남들에게는 선하게 대하셨던 분인데 난폭한 행동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가족이고 자식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남들에게까지 난폭하게 했다는 것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cctv를 한번 보여달라 했더니 그건 병원 규정상 어렵다며 거부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병원 관계자와 심하게 싸웠어 기억이 납니다 알고 보니 요양병원에는 중요 인물과 간호사 몇 명을 제외하고 간병인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였습니다.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가게 되고 며칠 후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님이 식사도 못하시고 물도 넘기지 못하신다며 상담 요청을 하더군요.
6-3. 요양병원에서 어머님 상테가 악화
요양 병원을 갔더니 병원 관계자가 하는 말이 어머님의 상태가 이러하니 대소변은 옆구리에 호수를 꽂아서 해결하고 음식과 물은 코에다가 호수를 꽂아서 수익으로 보충을 한다고 하더군요 이미 그렇게 조치를 취해놓고 저에게 상담 요청 전화를 준 것이지요 불쾌하더군요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이미 모든 것들을 취해놓은 상태에서 뭐 하러 상담을 요청했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집에 계실 때에는 가족들이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호전된 모습을 보려고 요양 병원으로 모셨는데 상태가 호전되기는커녕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살도 갑자기 빠지고 무엇보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안되겠다 싶더군요 요양병원을 빨리 나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약 3개월 정도 계시다가 이번에는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지요 요양원에는 전담 의사 한 분과 간호사 경험이 있는 간병인 2분인가 3분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모두 한국의 현지인들 이어서 안심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기도 했고요 물론 그것이 표면상으로의 모습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노였습니다.
6-4.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사전에 예방~~~
요양원에서도 상태는 전혀 나아지는 모습은 않보이고 역시 마찬가지로 코에 호수가 연결되어 있어서 식사와 물 외에도 사람이 섭취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코에 연결된 호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역시 사람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로 말하자면 의식불명 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님을 위하는 일이라고는 자주 찻아 뵙는 것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으니까요 마음이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을 요양원에 계시던 중에 제가 출근한 어느 날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날따라 이전 화가 몹시 불길한 느낌이 들지 뭡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불길하다는 생각이 이번처럼 맞아떨어진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이 전화는 불길한 전화라는 예상이 맞았으니까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요양원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어머님께서 눈을 감고 계신 모습이 어찌 이렇게도 슬퍼 보이시는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님의 말년이 이렇게 허무하고 쓸쓸할 수가 있을까 목놓아 울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식이 돼서 부모님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서 임종이라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이런 마음 아픔과 슬픔은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6-5. 떠나신 어머님과 지난 세월의 그리움
끝으로 제가 이러한 경험담을 올리는 이유는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지만 . 조기발견과 예방을 텅해 가족들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매 나에게도 올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혹여나 나의 부모님이 치매 증상을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으로 가서 담당 의사와 상담을 하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모시고 계신 부모님께서 70 이상의 되셨다면 미리 치매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고 사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부모님이나 자식들에게 후회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저의 경험담을 통해서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OME